
오페라는 19세기 후반, 베르디와 푸치니를 거치며 하나의 완성된 양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회, 문화, 예술 전반의 급격한 변화는 오페라의 형식과 내용 모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번 글에서는 푸치니 이후의 20세기 현대 오페라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중심으로, 대표적인 작곡가들과 그들의 작품, 그리고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오페라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왔는지 살펴본다.
1. 전통을 해체한 모더니즘의 실험들
20세기 초,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대격변을 겪으며 기존의 가치관이 붕괴되었다. 이는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전통적인 오페라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살로메》, 《엘렉트라》 등의 작품에서 음향과 극의 강도를 극대화하며 모더니즘적인 감각을 도입하였다. 동시에 아놀트 쇤베르크는 무조음악과 12음기법을 오페라에 도입하면서 전통적인 조성 체계를 벗어난 새로운 구조를 시도하였다. 그의 작품 《모세와 아론》은 미완성된 상태로 남았지만, 오페라 장르에 미친 실험적 영향은 매우 크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흐름은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와 《룰루》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베르크는 쇤베르크의 제자였지만 보다 서정적이고 극적인 접근으로 청중과의 소통을 시도하였다. 그의 오페라는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부조리를 날카롭게 그려내며 현대 오페라의 주제적 깊이를 넓혔다.
2. 브리튼과 스트라빈스키: 고전으로 회귀한 새로운 감성
모더니즘의 실험이 지나간 후, 20세기 중반에는 새로운 형식의 균형을 모색하는 작곡가들이 등장하였다. 벤쟈민 브리튼은 영국 오페라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로, 《피터 그라임스》, 《턴의 나사》, 《빌리 버드》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 심리와 사회적 윤리를 섬세하게 다루었다. 그의 음악은 현대적인 감각을 지니면서도 고전적 명료함과 접근성을 갖추고 있어,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상연되고 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역시 고전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곡가 중 하나이다. 그의 오페라 《오이디푸스 렉스》와 《난봉꾼의 행각》은 각각 라틴어와 18세기식 형식을 활용하여 고전적인 미학 속에 현대적 주제를 담아냈다. 스트라빈스키는 “무질서한 감정의 발산”이 아닌 “지적이고 절제된 구성”을 추구하며, 오페라의 미학을 다시 정립하고자 했다.
3. 정치와 사회를 반영한 후기 현대 오페라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며 오페라는 점점 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기 시작하였다. 미국 작곡가 존 애덤스의 《닉슨 인 차이나》는 1972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중국 방문을 소재로 한 오페라로, 정치 외교 사건을 예술의 무대 위로 옮긴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된다. 이후 《닥터 아토믹》, 《더 데스 오브 클링호퍼》 등도 현대사와 인물에 대한 음악적 해석을 시도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20세기 말부터는 성(젠더), 인종, 환경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오페라가 다루기 시작하였다. 여성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의 《L'Amour de Loin(먼 곳의 사랑)》은 서정적인 사운드와 현대적 언어를 결합하여 오페라가 여전히 현대인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임을 증명하였다.
20세기 현대 오페라는 단순하게 음악 장르의 변화가 아니라, 예술의 본질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의 산물이었다. 푸치니 이후의 작곡가들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의 요청에 맞게 해체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오페라의 표현 가능성과 예술적 깊이를 확장하였다.
오늘날의 오페라는 더 이상 특정한 형식이나 조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제는 고전과 현대, 개인과 사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종합예술로 새로운 이야기를 무대 위에 펼치고 있다. 20세기의 실험과 전환은 바로 그러한 현재를 가능하게 만든 토대였으며, 그 흐름은 21세기 지금의 오페라 형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