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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오페라와 정치: <나부코>에서 <돈 카를로>까지 자유와 민족 서사

by neokbw123 2025. 4. 10.

이탈리아

베르디는 단순히 오페라 작곡가가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를 음악으로 전달했던 19세기 이탈리아의 문화적 선구자였다. 이번 글에서는 베르디의 대표작 <나부코><돈 카를로>를 중심으로, 그의 오페라에 담긴 자유와 민족주의 서사가 어떻게 이탈리아 통일 운동과 연결되었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려고 한다. 특히 이 두 작품이 어떻게 청중의 감정과 시대정신을 자극했는지를 분석하면서 베르디가 음악으로 구현한 정치적 이상을 고찰한다.


1. <나부코>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오페라가 된 민족의 외침

1842년 밀라노에서 초연된 <나부코>는 베르디의 초기 성공작일 뿐만 아니라 오페라 역사상 가장 강한 정치적 상징성을 가진 작품 중에 하나로 평가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제3막에 등장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Va, pensiero)’이다. 겉으로는 바빌론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한(恨)을 담은 이 합창은 당시에 오스트리아 지배 하에 있던 이탈리아 대중에게는 자유와 민족 해방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청중들은 유대인의 운명에 이탈리아 자신의 현실을 투영하였고, 이것은 오페라 공연장을 정치적 공감의 장으로 전환시켰다. 베르디는 이 작품을 통해서 단지 예술적 감동을 넘어 공동체의 정체성과 해방의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이후 <나부코>는 단순한 극작품이 아니라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비공식적인 국가’로 간주되기까지 이르렀다.

2. <시몬 보카네그라>와 권력, 민중, 아버지의 비극

1857년에 초연된 <시몬 보카네그라>는 이탈리아 통일이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에 발표된 작품이다. 정치 권력과 인간 내면의 갈등이 중심이 된다. 주인공 시몬은 제노바의 정치 지도자로서 개인적인 고통과 공적인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작품 전반에 걸쳐 흐르는 테마는 권력을 잡은 자가 반드시 선하지 않고 민중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시몬이 자신의 딸 아멜리아를 되찾고 끝내 그녀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은 베르디가 권력보다 인간성, 정서적 연대, 가족애를 무엇보다 더 중요하게 보았음을 암시한다. 또한 작곡가는 이 오페라에서 아버지와 딸의 재회를 중심으로 정치적 화합의 의미를 섬세하게 작품에 녹여내어 당시 분열된 이탈리아의 화합에 대한 갈망을 음악적으로 표현했다.

3. <돈 카를로>와 검열을 넘어선 진실: 제국과 자유 사이

베르디 후기의 걸작 <돈 카를로>(1867)는 스페인 황실을 배경으로 하며 종교적 억압, 황제의 권위, 개인의 자유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 작품은 원래 프랑스어로 쓰인 작품인데, 다양한 버전이 있으며 그 내용 또한 검열의 대상이 되었을 정도로 당대의 정치적을 민감한 부분을 반영한다. 특히 필리포 2세와 대심문관의 장면은 권력과 종교가 결탁하여 인간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카를로는 단지 비운의 왕자가 아니라 자유를 갈망하며 체제에 저항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베르디는 이 오페라를 통해 국가와 교회 권력의 한계, 진정한 인간 해방의 조건을 탐색한다. <돈 카를로>는 당시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자각할 기회를 제공한 예술이었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단지 아름다운 음악으로만 남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19세기 이탈리아인들에게 있어서 정체성과 자유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적, 정치적 선언문이었다. <나부코>에서 시작하여 <돈 카를로>에 이르기까지 베르디는 끊임없이 오페라로 사회와 대화를 시도했고 오페라를 통해 시대정신을 노래했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작품이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음악을 통한 역사 쓰기’를 실현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