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과 오페라는 서로 다른 장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아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현대 뮤지컬에서는 오페라의 다양한 유산이 그대로 계승되거나 새롭게 재해석되어 사용되고 있다. 음악과 극의 통합, 드라마적 표현을 위한 성악 기법, 웅장한 무대 연출 등은 본질적으로 오페라에서 기원한 요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현대 뮤지컬 속에 스며있는 오페라의 유산을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1. 음악과 극의 통합
오페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종합예술이다. 대사보다는 음악이 우선시되며 등장인물의 내면과 갈등, 관계의 전개가 음악을 통해서 표현된다. 이러한 형식은 뮤지컬 장르의 기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에 등장한 ‘통합 뮤지컬(Integrated Musical)’은 음악, 노래, 안무, 대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구조를 가지며 오페라의 전통을 이어갔다.
대표적인 예시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다. 이 작품은 오페라 극장을 배경으로 하며 극 중극 형태로 오페라 아리아가 삽입됨과 동시에 전체 대사의 상당 부분이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 선율의 반복, 동기의 발전, 오케스트레이션의 극적인 활용은 전형적인 오페라 작곡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지킬 앤 하이드> 등의 작품은 음악이 극을 주도하는 전형적인 오페라적 구조를 따르고 있다.
2. 성악적 기법과 드라마적 표현의 계승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성악이다. 단순한 가창이 아니라 극적인 감정 표현과 강력한 발성을 요구하는 성악 기법은 뮤지컬에서도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현대 뮤지컬의 주요 넘버들은 단순한 대중가요 스타일을 넘어서서 고난이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며 특히 고음, 벨칸토식 호흡법, 음색의 조절 등은 뮤지컬 배우가 노래를 더욱 능숙하게 표현하게 위해 필요한 오페라와 같은 테크닉이다.
예를 들어 <레미제라블>의 ‘Bring Him Home’은 테너의 고음역대 성부를 부드럽게 처리하면서도 깊은 감정을 전달해야 하므로 클래식 성악 기법이 필수적이다. <미스 사이공>의 ‘I’d Give My Life for You’ 또한 드라마틱한 감정선과 함께 폭넓은 음역대를 요구한다. 이외에도 <위키드>의 ‘Defying Gravity’, <노트르담 드 파리>의 ‘Belle’ 등은 오페라틱한 기법이 없으면 소화하기 매우 어려운 넘버들이다.
또한 무대 위에서의 연기력도 매우 중요하다. 오페라 가수들은 목소리 뿐만이 아니라 몸짓, 시선, 표정 등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며, 이는 뮤지컬 배우들에게도 똑같이 요구된다. 뮤지컬 연기자들은 장면의 흐름에 따라 대사와 노래를 넘나들며 감정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만들어야 하고 이와 같은 연극적 표현은 오페라의 전통에서 비롯되어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3. 서사 구조와 무대 연출
오페라는 항상 시대적 배경과 철학, 신화나 역사 등 깊은 서사를 담아내는 예술이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 뮤지컬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단순히 사랑 이야기나 오락적 요소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 정체성, 역사적 사건 등 복합적인 주제를 다루는 뮤지컬은 오페라의 정신적인 유산을 계승하는 대표적인 예다.
<해밀턴>은 미국의 독립과 건국을 다루는 역사 뮤지컬이며, <렌트>는 뉴욕의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삶과 에이즈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청소년의 억압과 성 문제, <디어 에반 핸슨>은 정신 건강과 소외 문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뮤지컬은 점점 더 깊은 서사와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담아내고 있으며, 이것은 오페라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무대 연출 역시 오페라에서 유래된 화려함과 상징성을 유지하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장면, <라이온 킹>에서의 인형극적 연출, <노트르담 드 파리>의 고딕 양식 무대 등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서사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장치이다. 조명, 음향, 분장, 소품이 아주 유기적으로 결합된 무대 구성은 오페라가 지닌 종합예술적인 특성을 뮤지컬로 계승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현대 뮤지컬은 오페라의 다양한 유산을 음악, 연기, 연출 전반에 걸쳐 계승하고 있으며 이것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예술로 진화하고 있다. 오페라가 지닌 감정의 극대화, 서사의 무게감, 음악적 통합성은 뮤지컬을 통해 대중적으로 재탄생하며 더 넓은 관객층과 친밀하게 소통하게 되었다.
뮤지컬과 오페라는 서로 별개의 장르가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한 형제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뮤지컬을 감상할 때 오페라의 전통과 표현 기법을 이해한다면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뮤지컬에는 수백 년간 이어져온 오페라의 숨결이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