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이름만 들어도 마음 깊숙이 음악이 울려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곳. 유럽의 중심에서 고요하게 자리한 이 도시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서 음악의 성지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특히 매년 여름이면 전 세계의 음악 애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의 목적지로 향한다. 바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er Festspiele)이다.
이 축제를 처음 접했을 때 단순하게 공연 관람을 넘는 어떤 종교적 감흥에 가까운 체험이었다. 모차르트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바로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음악. 그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천재 작곡가의 숨결이 느껴지고, 공연장이 아닌 공기 속에서도 클래식의 선율이 맴도는 듯했다.
1. 음악과 도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에 시작되어 100년 이상의 역사가 있는 유럽 최고의 클래식 음악 축제이다. 매년 7월부터 8월까지 약 5주간 진행되고 오페라, 교향악 콘서트, 실내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가 도심 곳곳에서 펼쳐진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도시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공연장이 된다. 미라벨 궁전의 정원, 페터 교회 내부, 페스티벌 하우스, 심지어 모차르트 생가 앞 광장까지 모든 공간이 음악의 무대가 된다. 마치 도시 전체가 클래식 음악의 거대한 악보가 된듯 보였고 나는 그 위를 걷는 음표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관객의 수준과 태도였다. 정장을 갖춰 입은 현지인부터 세계 각지에서 온 음악 애호가까지 모두가 조용히 숨을 죽이고 무대를 바라보는 그 분위기 속에서 나는 클래식 음악이 가진 보편성과 숭고함을 마음껏 체감할 수 있었다.
2. 모차르트를 다시 만나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출생지이면서 그의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축제는 단순한 공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매해 모차르트의 대표작들은 다양한 연출로 재해석되어 무대에 오르면서 특히 그의 오페라 작품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하여 놀라운 감동을 선사한다.
내가 본 공연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였는데, 무대 연출은 고전적인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인물 간 심리 묘사와 음악의 흐름을 매우 섬세하게 조율했다. 지휘자의 손끝에서 살아나는 리듬과 성악가의 한 음절 한 음절에 실리는 감정. 과장해서 표현하자마면 그것은 마치 모차르트가 시간의 벽을 넘어 나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경험이었다.
축제 기간 동안에는 모차르트 탄생지 박물관, 모차르트 광장, 그의 가족이 거주하던 하우스 등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음악과 그의 생애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 도시의 구조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다.
3. 공연 그 이상의 감동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진정한 매력은 단순히 수준 높은 공연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 전체가 예술로 함께 호흡하고 사람들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마주한다. 거리의 작은 앙상블 공연, 성당 앞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 카페 안의 실내악 트리오. 이러한 장면들은 이 도시가 음악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여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그 속에서 하나의 관객이 아니라 예술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버렸다. 감상이 아니라 체험, 그것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가진 진짜 힘이었다. 오페라, 교향곡, 연극이 각각 다른 공연장에서 펼쳐지지만, 결국 하나의 거대한 감동으로 수렴되는 이 구조 속에서 나는 한명의 예술인으로서 예술의 진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단순한 음악 축제를 넘어, 삶 속에서 예술이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모차르트의 음악이 조용하게 그러나 확고하게 흐르고 있었다.
잘츠부르크에서의 그 여름은 지금도 나에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클래식 성악가로서 약간은 감정적으로 매말라있던 나에게 클래식 음악이 단지 감상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삶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그 현장. 나는 언젠가 다시 그 음악의 도시를 찾게 되리라 다짐해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한 번 모차르트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