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리골레토>는 단순한 허구가 아닌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실화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정치적 압력과 검열 속에서도 주세페 베르디의 음악적 천재성이 빛난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번 글에서는 <리골레토>의 줄거리, 실존 인물인 프랑수아 1세와 트리브울레, 그리고 당대 프랑스 궁정의 도덕적 타락과 스캔들을 중심으로 그 배경을 깊이 있게 다룬다.
1. <리골레토>의 줄거리
오페라 <리골레토>는 1851년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가 작곡한 3막의 이탈리아 오페라이다. 원작은 프랑스의 극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희곡 『르 루아 셩 디베르(Le roi s'amuse)』이다.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베르디는 원작의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와 개인적 비극을 오페라 형식으로 재탄생시켰다.
주인공 리골레토는 권력자 만토바 공작의 어릿광대이자 궁정에서 조롱과 풍자를 담당하는 인물이다. 그는 다른 귀족들을 조롱하면서도 자신의 딸 질다만은 세상으로부터 숨기며 소중히 키운다. 하지만 공작은 질다를 유혹하고 리골레토는 그에게 복수를 꾀하나 오히려 질다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이 작품은 인간의 복수심, 권력의 오만함, 순수함의 희생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2.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와 진짜 ‘리골레토’ 트리브울레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오페라가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희곡의 주인공은 프랑스의 국왕 프랑수아 1세이고 리골레토에 해당하는 인물은 실존했던 궁정 어릿광대 ‘트리브울레(Triboulet)’이다. 트리브울레는 16세기 초 프랑수아 1세와 그의 부친 루이 12세 시대에 실제로 활동했던 인물로 역사서에서 냉소적이고도 지적이며 때로는 잔인한 언변으로 유명하다.
프랑수아 1세는 방탕하고 여성 편력이 심한 군주로서 당시 궁정은 수많은 연애와 음모, 부정부패로 가득했다. 트리브울레는 왕의 이런 일탈을 조롱하며 풍자했지만 결국은 그의 언행으로 인해 적을 많이 쌓았고 그의 말 한마디가 한 여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실화는 위고와 베르디에게 영감을 주며 “어릿광대가 겪는 비극”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영웅상을 탄생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3. 프랑스 궁정의 스캔들
<리골레토>의 탄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오스트리아 지배 하의 북이탈리아에서는 왕실에 대한 비판적 묘사가 강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초연 직전까지도 베르디와 대본가 피아베는 검열 당국과 갈등을 겪고 있었고 결국 왕의 이름은 ‘프랑수아 1세’에서 ‘만토바 공작’으로 가꾸고 무대는 프랑스 궁정에서 가상의 이탈리아 도시로 바꿔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골레토>는 당시 관객들에게 엄청난 열풍을 일으켰다. ‘여자의 마음(La donna è mobile)’과 같은 유명 아리아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 곡은 단순한 멜로디 이상의 상징성을 지녔다. 이 아리아는 공작의 무책임한 사랑과 여성을 향한 이중적인 시선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처럼 <리골레토>는 외형적으로는 고전적인 비극의 구조를 따르면서도, 당대 사회의 도덕적 위선과 정치적 억압을 섬세하게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베르디는 음악과 극적인 감정 전개를 통해서 인간 내면의 어두운 곳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리골레토>는 단순히 한 여인의 죽음을 그린 비극이 아니다. 권력자들의 이중성과 그들의 어릿광대가 실은 가장 비극적인 인간일 수 있다는 역설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오페라는 당시 프랑스 궁정의 스캔들과 현실을 음악과 무대를 통해 고발한 예술적 성취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리골레토>는 전 세계 오페라 하우스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으며 그 상징성과 감정의 깊이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예술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역사와 권력, 인간성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