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칼라스 그녀는 오페라 가수 이상의 존재였다. 그녀는 오페라 무대를 예술의 정점으로 끌어올린 상징적인 인물로, ‘라 디비나(La Divina, 신성한 그녀)’라는 칭호를 얻으며 20세기 오페라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번 글에서는 그녀의 전성기와 주요 작품들 그리고 독보적인 오페라 해석 방식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보려 한다.
1. 마리아 칼라스의 전성기
마리아 칼라스의 전성기는 보통 1949년부터 1965년까지로 평가된다. 특히 1950년대는 그녀가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로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 시기 칼라스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코벤트 가든, 파리 국립 오페라 등 많은 무대에서 주역으로 출연하며 오페라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녀는 단순하게 뛰어난 성량과 음역을 지닌 가수로 평가되지 않았다. 각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극적인 연기와 깊이 있는 해석으로 당대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찬사를 받았다. 특히 벨칸토 양식의 오페라를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당시에 거의 연주되지 않던 도니제티, 벨리니, 로시니의 작품들을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녀의 전성기는 단순한 인기의 정점이 아닌, 오페라 예술의 해석 방식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시기로 간주된다.
2. 대표작과 명연기
마리아 칼라스는 수많은 오페라 무대에서 명연기를 선보였고 그중에서도 벨리니의 <노르마>, 푸치니의 <토스카>, 도니제티의 <루치아 디 라메르무어>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노르마>에서는 사제이자 어머니로서의 내면적 갈등을 섬세하게 표현하였고 도입 아리아 ‘Casta Diva’는 그녀의 예술성을 대표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아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토스카>에서는 치명적인 사랑과 절박한 감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었으며 아리아 ‘Vissi d’arte’에서는 단순한 성악적 기교를 넘어선 예술가로서의 내면을 잘 표현하였다. 이러한 연기는 단지 청각적인 만족을 넘어 시각적, 정서적 감동을 동반하는 종합예술로 완성되었다.
칼라스는 악보에 담긴 음표를 단순하게 재현하는 것을 넘어, 각 인물의 심리와 감정선까지 분석하여 그 인물을 입체적으로 전달하였다. 이는 기존의 ‘음악 중심’의 오페라에서 ‘드라마 중심’의 오페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이끈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3. 음악 철학과 예술적 접근
마리아 칼라스의 오페라 해석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치밀한 예술적 연구와 철학에 기반하였다. 그녀는 작품 속 인물의 심리 상태와 대사의 의미, 음악적 구성과 작곡가의 의도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자신만의 감정과 해석을 덧붙여 독창적인 무대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의 ‘기교 중심’이었던 오페라 관행에서 벗어나 '해석 중심'의 예술로 일보 전진하는 데 기여하였다.
벨칸토 양식에서 요구되는 미묘한 다이나믹 조절과 꾸밈음 사용에 있어서도 그녀는 극도의 정교함을 추구하였으며,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에서도 지휘자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녀는 기술적인 완벽함보다 진정성 있는 감정 전달을 우선시하였고 어쩔때는 음정이나 발성의 작은 불완전함조차도 예술적 감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가수였다.
그녀의 음악 해석 방식은 오늘날에도 오페라 해설서와 연출 자료에서 인용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많은 성악가들이 그녀의 녹음과 영상을 교본처럼 참고한다. 마리아 칼라스는 단순한 프리마돈나가 아니라 오페라 해석의 새로운 장을 연 예술가로서 지금까지도 계속적으로 조명되고 있는 존재이다.